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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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사/랑
지금부터 약 백 년 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웃에 있는 일본에 이노우에 가우로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의 근대화를 가져다주었던 명치유신의 주인공 역할을 감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일본의 외무대신으로 눈부신 활약을 했습니다. 또 일본이 오늘날과 같이 경제대국으로 이룩할 수 있었던 주춧돌의 역할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일본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꼽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아직 젊은 시절이었습니다. 한번은 모종의 중대한 회의를 마치고서 밤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도중이었습니다. 난데없이 복면을 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무방비 상태인 이노우에를 칼로 무자비하게 난도질을 했습니다. 명주실낱 같은 목숨만 그에게 붙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그를 업어다가 집에 눕혀 놓았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노우에는 그런 괴로움 속에서 형에게 애절하게 애원을 했습니다. 이제 내가 살아날 가능성이 없으니 어서 빨리 나를 죽여서 이 고통을 한시라도 빨리 면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형이 동생을 죽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머뭇머뭇 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노우에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괴로움을 면하게 해달라고 자꾸 부탁을 했습니다. 형이 보아도 도저히 동생이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동생의 말대로 동생을 죽여서 고통을 면하게 해주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칼집에서 칼을 꺼냈습니다. 두 손을 잡고서는 정신을 한 데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야앗”하는 기압 소리와 함께 동생의 목을 내리치려고 하는 찰나였습니다. 갑자기 동생의 모습이 없어지고 난데없이 자기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비록 짖이겨진 고기 덩어리와 같은 이노우에였지만 어머니만큼은 절대로 그를 포기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다 포기했지만 어머니만큼은 절대로 그를 단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극적인 순간에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서 자기 아들을 얼싸안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노우에의 형은 결국 어머니 때문에 동생의 애절한 소원을 들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어머니의 초인적인 간호와 의사들의 정성어린 치료 덕분에 이노우에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역사에 참으로 위대한 인물로 꼽히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근대화를 이루는 일에 주역이 되는 일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가운데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끈질긴 사랑을 보게 됩니다. 영적으로 보면 베드로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단념하지 아니하시고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그에게 사도직을 회복시켜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사건은 베드로에게는 참으로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가 닭 우는 소리를 듣고서 눈물을 흘리면서 처절하게 회개를 했지만 이미 저지른 일을 없었던 일로 돌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가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았다 할지라도, 용서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가 계속해서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이 다 인정한다 해도 베드로 자신이 자신을 용납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 자신이 자기를 속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찾아주시지 않았던들 아마도 베드로는 일평생 동안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고기 잡는 어부의 신세로 서글픈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와 같은 그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의 그 사랑을 확인하면서 베드로의 사도직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예수님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베드로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베드로와 같이 실수할 때도 있고 잘못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결코 부인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다를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 요나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 나에게 명하셨습니다. 니느웨 성에 가서 니느웨 성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 음을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로 가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큰 풍랑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요나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풍랑입니다. 요나를 바닷속으로 던 져 넣습니다.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로 하여금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많은 고생을 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요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요나를 다시금 위대한 선지 자로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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