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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회복하라
제목 | 예배를 회복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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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삼하 6:1-11 | ||
설교자 | 김재수목사 | 날짜 | 2021-01-10 |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 언제나 변함없는 공식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배드린 것만큼 믿고 예배드린 것만큼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배의 수준이 곧 우리 믿음의 수준입니다. 그래서 영국 성공회의 윌리암 템플이 말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신자의 수준을 능가한 예배를 드린 적 없고 예배의 수준을 능가하여 세상이 변화된 적이 없다. 개인 신앙의 수준은 그가 드린 예배의 수준이고 그 시대 세상의 수준은 그 시대 교회가 드리는 예배의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 말에 동의합니까?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가 가장 믿음이 좋을 때는 예배 잘 드린 때였습니다. 교회가기 좋아하고 말씀듣기를 사모하고 예배를 사랑할 때 우리의 믿음이 가장 좋은 때였습니다. 예배는 우리 믿음을 측정하는 영적 척도입니다. 제가 전에 목회하던 교회에 집사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한 때 믿음이 좋았던 이 분은 어느날부터 예배가 싫고 예배때만 되면 졸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초등학교 다니는 딸과 함께 교회에 왔는데 딸이 말합니다. 엄마, 오늘은 졸지마. 알았지. 엄마가 알았어. 그런데 예배가 시작되고 장로님 기도가 시작되자 몸이 노곤해지지 시작했습니다. 장로님 기도가 길어지면서 눈이 가물가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설교가 시작되었는데 그날따라 설교가 길고 지루합니다. 졸음을 이기기 위해 주보를 훌터 보는 데 왜 그렇게 오타가 많은지. 오타를 4 개나 잡아내고 교정까지 마쳤는데 설교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20분이 지나자 자동적으로 몸이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뭐가 툭해서 깨어 보니까 성경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딸이 엄마를 쿡 찌르며 말합니다. 내가 졸지 말라고 그랬지? 엄마, 그럴바에는 빨리 헌금 내고 가자. 두 모녀는 얼른 헌금 내고 목사님이 축도하는 순간 잽쌔게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떻습니까? 결국 신앙생활은 예배입니다. 예배 잘 드리면 신앙생활은 살고 예배 못드리면 신앙생활은 죽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상을 통해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목숨걸고 쫓았고 다윗은 15번이나 피하면서 수없는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계속되는 고난은 없습니다. 드디어 사울은 블레셋에게 죽고 사무엘하로 오면서 다윗은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어 한 첫 번째 일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일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속이 다스리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다윗은 그 성을 빼앗고 다윗성이라 불렀습니다. 예루살렘을 수도를 정하면서 다윗이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 와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법궤는 불레셋에게 빼앗겨 이리 저리 전전하다가 아미나답의 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효로 하여금 법궤를 가져오게 했는데 법궤를 운반하는 동안 사고가 났습니다. 웃사가 그만 죽은 것입니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쳐서 법궤옆에서 죽었습니다. 법궤가 무엇입니까?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만들라 해서 만든 성물 아닙니까? 그 안에 십계명 돌판, 아론의 지팡이, 만나 담은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의 속성을 보여줍니다. 십계명 두 돌판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론의 지팡이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만나담은 항아리는 공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위에 속죄소가 있고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거기에 피를 뿌리며 하나님이 그 죄를 덮어줍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말씀, 구원, 공급, 용서가 하나님의 네 가지 속성입니다. 하나님이 거기서 백성과 만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니까 법궤는 단순한 상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예루살렘에 법궤를 모셔와야 하겠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아직 각료를 임명하기도 전에, 아직 정부를 조직하기 전에, 군대를 창설하고 왕궁을 짓기도 전에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법궤를 모시면서 3 사람이 나타납니다. 웃사, 다윗, 그리고 미갈입니다. 이 세 사람은 법궤 모시는 세 종류의 사람이요 세 종류의 예배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예배자입니까? 이 세 사람을 통해 우리 예배를 돌아보시지 않겠습니까? 먼저 웃사입니다. 법궤를 소가 끄는 수레에 싣고 오는데 소가 뛰는 바람에 법궤가 땅이 떨어질 위기에 빠지자 웃사가 급히 손으로 법궤를 붙잡았는데 그 순간 하나님이 그를 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은 선하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 아닙니까? 공중의 새 한 마리도 아끼고 들의 풀 한포기도 사랑하시는 분이 어떻게 법궤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은 당신의 백성을 죽일 수 있습니까? 그러면 웃사는 그때 법궤를 붙잡지 말고 내버려 두어야 했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왜 웃사를 죽이셨을까? 첫 번째 성경적 대답은 법궤를 운반하는 방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에 의하면 법궤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됩니다. 운반할 때도 사람의 손이 직접 닿지 않도록 법궤에 부착된 고리에 막대기를 끼워 운반해야 합니다. 수레에 실어 운반하는 것은 당시 불레셋이 썻던 방식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편리하기 때문에 차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웃사는 이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가 법궤를 운반한 것은 참 잘했습니다. 그도 아마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왕 하려고 했다면 말씀대로 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요 하나님 자신을 상징하는 법궤에 손을 대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손대는 것이었습니다.
웃사는 열심히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지식이 없는 열심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는 손대지 말아야 할 법궤에 손을 댓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법으로가 아니라 자기에게 편리한 방법으로 법궤를 이동했습니다. 수레에 태워 소가 끌고 가면 고리를 끼워서 가마처럼 운반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오시면 모든 일을 그치고 예배에 집중하세요. 예배가 우리의 최고의 생명입니다.
모든 신앙생활이 예배에 달려 있습니다. 예배 한번 잘드려 행복하고 예배 한번 잘못드려 시험듭니다. 여러분은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웃사의 예배입니까? 다윗의 예배입니까? 아니면 미갈의 예배입니까?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평생 행복한 예배자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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