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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제목 |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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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행 11:19-26 | ||
설교자 | 김재수 | 날짜 | 2018-06-03 |
지금 세계교회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어떤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까? 보통 예루살렘교회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훌륭한 교회입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양적으로 급성장한 교회입니다.
120명으로 시작된 교회가 하루사이에 3천, 5천씩 불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전도명령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이 명령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자신들끼리만 떡을 떼었습니다. 자신들끼리만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루살렘교회에 환란과 핍박을 주면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흩어진 유대인들이 복음을 전해서 세워진 교회들이 많았는데 오늘 본문의 안디옥 교회가 그렇게 탄생한 교회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생긴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설립된 교회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환난 중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박해가 일어나 스데반이라는 평신도가 돌에 맞아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 기독교인들이 안디옥에 가서 그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19절에 보면 안디옥교회의 설립자들이 다 스데반 일로 환난과 핍박을 당한 자들이 세웠습니다. 그러니까 환난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는 교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에서 피난 온 성도들입니다.
일곱 집사 중 한사람인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초대교회에 큰 환난이 닥쳤을 때, 그때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재산을 버리고, 멀리 안디옥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안디옥에 온 성도들은 그곳에서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잃어버린 것으로 시험에 들지 않고, 새 생명의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믿음이 살아나고 능력 있게 됩니다.
조그마한 시험을 만나도 낙심하고, 좌절하고, 그것을 크게 확대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비록 큰 고통과 환난을 당해도 더욱 푯대를 향하여 신앙으로 계속 전진해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환란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임한 고통에도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환란의 바람이 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태풍이 그냥 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광풍으로 하늘의 대기를 이동시키고, 대지를 깨끗이 소제하고, 바다를 뒤흔들어서 바닷물이 썩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안디옥 교회는 두 가지 특색이 있습니다. ⑴ 오직 주님만 전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오직 주님만 전하는 곳입니다. 진짜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위치에요. 시설이에요. 규모에요. 아니면 역사에요. 이것으로 교회의 질을 평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교회가 얼마나 좋은 교회인가는 그 교회와 목사와 성도들이 얼마나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 애쓰고 복음을 위해서 살며 예수님만 섬기느냐에요. 그래야 역사가 지나간 뒤에도 존재할 수 있는 안디옥 교회처럼 빛을 바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를 허락하신 것은 오직 주님만 전하라고 세운 것이고, 목사를 세운 것도 오직 주님만 전하라고 세운 것입니다. 저도 우리 신석제단에서 오직 주의 복음만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똑같은 동역자들이요, 사명자들입니다.
⑵ 안디옥 교회는 주의 손이 함께 한 교회였습니다. 교회부흥은 인간적으로 시키는 것이 아니에요.
행정을 잘 한다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은 아니에요. 목사가 설교를 잘 한다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이 아니에요. 물론 모든 행정도, 설교도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큰 것은 주의 손이 함께 하실 때만이 교회가 부흥되는 줄로 믿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주의 손이 함께 하시므로 수다한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우리 신석교회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러분, 만사가 주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3) 안디옥교회는 구제하는 교회였습니다. 자신들이 떠났던 예루살렘 교회가 흉년으로 가난해지고 어려워졌습니다. AD44-48년 로마 제 4대 황제 때, 역사가들이 기록할 정도로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때에 안디옥교회에서는 모 교회에 돈을 보내어 물질적으로 정성을 다해 구제한 것입니다.
구제를 할 때 바나바와 사울이 직접 챙겨서 신앙이 좋은 장로님에게 보낸 것입니다.
당시 안디옥도 어려웠습니다. 모두가 어려웠습니다. 쓰고 남은 것 도와주는 것은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 쓸 것 못쓰고 도와주는 것이 참으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웃의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입니다. 개척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안디옥 교회는 이웃의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였습니다.
(4)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은 교회입니다. 본문 26절 보세요.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어짐을 받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이 처음으로 불렸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안디옥 사람들은 남의 별명 짓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별명이 있었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갈릴리 사람들이 많으니까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을 가리켜 갈릴리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나사렛 당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나사렛에서 자라나셨고 거기서 사셨기 때문에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나사렛 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명칭은 안디옥 교회에서 받은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은 반은 욕과 조롱이 섞인 투로 예수를 믿는 자들을 경멸하여서 부른 별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성도들의 생각과 말과 표정과 삶이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시작했고, 세상에 유익을 주는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사관학교를 견학했다고 군인이 되는게 아니에요. 의과대학에 잠시 다녀왔다고 해서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법과대학에 갔다 왔다고 해서 판검사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교회를 드나들었다고 해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권사라는 이름이나. 집사라는 이름이나, 목사라는 이름은 있으나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계3:1절에 보면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 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고 책망하시는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른 신앙의 행함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성경 가운데 이름 없이 큰일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크게 쓰임 받으면서도 그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한 사람이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배후에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잘 되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주면서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다가 조용히 사라져간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약에 바나바가 없었다고 한다면 사도 바울도 없었을 것이며, 13편의 바울서신도 없었을 것입니다.
바나바라는 인물이 배후에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도 있었고, 13편의 바울서신이 기록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나바가 없었다면 사도 바울의 위대한 선교의 업적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 바나바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서 바나바를 찾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대가 남을 위하여 착한 일을 할 때에는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을 위해서 좋은 일을 했더니 결국 나에게도 좋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자기도 행복하고, 남을 성공시키는 사람이 자기도 성공시킵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의 뜻은 권위자, 위로의 아들, 권면의 아들, 격려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바나바는 이름처럼, 친절하고 온화하고, 인정도 많고, 학식도 뛰어나고, 항상 이웃을 돕고, 남을 격려하는 너그러운 인격자였고, 평화의 중재자였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붙여 준 이름입니다.
그는 바울을 도와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하였고, 함께 이방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 여행을 하였습니다. 이방인 지역의 성도를 위로하고, 권고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직무를 감당한 큰 일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요, 사도라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1차 전도 여행 후에 바울과 헤어지게 된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구브로에서 복음을 전하여 구브로 교회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주의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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