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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자녀들
제목 | 바울의 자녀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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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전 4:14-15 | ||
설교자 | 김재수 | 날짜 | 2018-05-06 |
자녀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영국 격언에 결혼한 가정에 자식이 없다는 것은 일광을, 태양 빛을 빼앗긴 지구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페스탈로치는 자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지상에서는 가정의 단란함이 최고로 빛나는 기쁨이요, 자녀를 보는 즐거움이 가장 성스러운 행복이다. 다른 것이 다 있어도 자녀가 없으면 부족한 가정이 된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장입니다. 그는 건강하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없으니까 늘 공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아,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리하면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첫 약속이 자식이 없는 너에게 자식을 주어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귀가 번쩍 열렸을 것입니다. 그는 안정된 생활을 다 버리고, 그곳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광야로 가서 자식을 얻어 살게 됩니다.
이삭도 꽃다운 여인 리브가와 결혼해서 19년간 부부 생활을 했지만 아기가 없었습니다.
내일 모레가 환갑인데 자녀가 없으니까 이삭은 허전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불임 여자였습니다.
당시는 의술이 발달되지 않아서 리브가가 불임 여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셔서 성경에 기록하기를 불임 여자라고 하셨습니다. 리브가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것을 모르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태를 치료하셔서 잉태케 하시므로 야곱과 에서 두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라헬은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그의 애인 야곱이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창세기29:20절에 보면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7년간 일을 해도 라헬을 아내로 얻을 수 있다는 소망 때문에 7년을 며칠처럼 기쁘게 일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야곱이 라헬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결혼한 후에도 라헬을 향한 야곱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끝까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아기를 낳지 못하니까, 남편의 사랑이 있고 건강이 있고 자유가 있고 밥이 있어도, 모든 것이 다 있어도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0:1절을 보면 나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하라. 아니면 내가 죽겠노라하며 야곱에게 마구 앙탈을 부립니다. 그러자 2절에 보면 야곱이 이 미련한 여자야, 내가 하나님이냐?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내가 어떻게 아기를 낳게 하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라헬을 불쌍히 여기셔서 돌아보시니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 아기가 요셉입니다.
그 후에 또 베냐민을 낳습니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여자를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니까 그 여자에게 아기가 생깁니다.
여러분, 자녀가 이렇게 귀합니다. 자녀를 두신 분들은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결혼해서 세월이 지났는데도 자녀가 없는 분은 자녀를 입양해서 기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태를, 라헬의 태를 돌아보셨듯이 여러분의 태를 돌아보셔서 자녀를 생산하는 축복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면 집이 달라집니다. 가게가 달라집니다. 자녀가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하루만 돌아보셔도 인생이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서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늘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도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늘 감사했습니다. 바울은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로마 황제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론 예수님, 하나님 때문이지만 그에게 자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녀입니까?
복음으로 낳은 믿음의 자녀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모든 교인들을 자기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많은 성도들에게 너희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내가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이 몇 백만 명이 되었겠습니까? 몇 십만 명이 되었겠습니까? 그 교회에 만 명의 교사가 있었겠습니까. 바울이 너희에게 만 명의 교사는 있을지라도 아비는 하나뿐이다고 말한 것은 내가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전도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을 자신의 믿음의 아들딸로 여겼습니다.
사실 우리 육신의 자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나중에 그 자녀와 영원히 떨어져 살게 됩니다.
나는 천국에 가고 그는 지옥에 가니까 그가 자식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전해서 믿음으로 낳은 자녀, 영적인 자녀는 천국에도 같이 가니까 참 자녀인 것입니다.
저가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할 테니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긴장을 하시는 것 같은데,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입으로 대답하지 말고 마음으로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까지 여러분이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여러분의 믿음의 자녀는 몇 명입니까? 여러분이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많을 것이고, 어떤 분은 몇 사람뿐일 것입니다. 만일 믿음의 자녀가 한 사람도 없다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결혼하여 열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할지라도 복음을 전하여 구원한 자녀가 한 사람도 없다면 아주 심각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9:16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복음을 전하면 내게 복이 오고 상대방이 살고, 전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죽고 내게 화가 온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하면 나도 의미가 있고 행복하고 사랑을 받고 상을 받고, 상대방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다이너마이트를 던지는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가 떨어지면 폭발하여 바위를 부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우리에게는 능력이 없어도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로마서 1: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할렐루야!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던지면 그곳에서 복음이 터져 그가 구원받고 그를 잡고 있는 사탄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전도한 사람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그들을 길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바로 잡아 주려고 고린도전서를 보내고, 고린도후서를 보내고, 디모데를 보내고, 디도를 보냈습니다.
성경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고린도전후서뿐 아니라 길고 짧은 편지를 계속 보냈답니다.
이렇게 믿어라. 이렇게 섬겨라. 그것은 잘못 되었다. 그것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벗어나서 위험하다.
그러면 안 된다는 편지를 계속 보내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하나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잘 자라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낳으면 그대로 버려두지 않고, 먹이고 입히고 목욕시키고 공부시켜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처럼, 여러분과 제가 전도한 사람을 그냥 두지 말고, 잊어버리지 말고 계속해서 잘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들을 위한 최고의 도움은 교회에 잘 나오게 하는 것이요, 그 다음의 도움은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참 신비로운 것은 베드로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냥 부인한 것이 아니라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 정도까지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저주하지도 않았고 맹세하지도 않았고 탐심으로 은 30에 예수님을 판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회복해서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고 가룟 유다는 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가복음 22:31-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복음서를 아무리 읽어 보아도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위해 기도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똑같은 죄를 지었는데도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신 베드로는 회복했고, 기도해 주지 않으신 유다는 망했습니다. 기도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그가 살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고 마귀의 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전해서 그 사람이 믿게 된 것도 감사하지만, 끝까지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세요.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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