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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의 의미
제목 | 성육신의 의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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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 1:1-3, 14-18 | ||
설교자 | 김재수 | 날짜 | 2018-12-09 |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이란 문자 그대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입니까?
대림절을 맞으며 우리 모두가 다 그 의미를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크리스마스는 일년 중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날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사회가 그렇게 되어갈수록 우리 크리스찬은 더욱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그 의미를 되찾아서, 우리의 구체적인 믿음생활로서 성탄의 바른 뜻을 이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탄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우리 각자의 견해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그 의미를 말할 수가 있겠지만, 오늘 읽으신 본문의 말씀은 그 핵심이 되는 의미를 우리에게 몇 가지로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 첫째는 바로 성육신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성육신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육신이 되었다고 하는 말인데, 그러면 무엇이 육신이 된 것입니까? 여기에 대해 오늘 본문은 14절에서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말씀이란 또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1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육신은 바로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육신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뜻인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이점을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우리 사람이 신처럼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엔 반대로 하나님이 오히려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 속에 담겨있는 어마어마한 의미를 여러분은 생각하실 수 있으십니까?
우리말에 천양지차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쉽게 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는 말이에요.
하늘은 하늘이요 땅은 땅이지, 하늘이 땅이 될 수 없고 땅이 하늘이 될 수 없듯이, 그 차이가 너무나도 멀고 뚜렷하다는 말이고, 비교조차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말은 곧 하늘이 땅이 되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도저히 인간의 생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는 가난한 자가 아니지만, 가난한 자를 위하여 가난한 자가 되셨다는 말입니다. 그는 슬퍼하는 자가 아니지만, 슬픈 자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가 되셨다는 말입니다. 그는 죄인이 아니지만, 죄인을 위하여 죄 없는 죄인이 되셨다는 말입니다.그는 죽을 수가 없는 분이시지만, 죽는 자를 위하여 죽는 자가 되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하는 성탄의 첫 번째 의미입니다!
그러면 성육신 하였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입니까? 여기에 대해 이 성육신 하였다는 의미는 바로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더니,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바로 이점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고 하며, 방자해 지기가 십상입니다.
구약시대에 보면,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들을 파송하셔서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의 대언자인 선지자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깨닫지도 못했으며 믿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나의 대언자로서 애굽으로 내려가라 하실 때, 모세가 대답하는 말이 사람들이 아무리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왔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고, 네게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이 도대체 뭐냐고 물으면서, 하나님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다고 할 것이라고 하면서 주저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인간에게 설명하며, 또 나타내 보여줄 것입니까?
그래서 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게 직접 나타나 계시하여 주신 것이 바로 성육신, 성탄입니다.
이것이 예수라는 아기가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간접적인 방법이 아니라 직접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성탄의 뜻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계시요, 직접적인 전달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인간에게 깨달을 수 있게, 믿을 수 있게, 알 수 있게 깨우쳐 주신 직접적인 계시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의미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육신의 뜻은 바로 공의와 사랑의 실천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이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 장로는 말씀하시기를 사랑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있다고 하셨는데, 사실 진정한 사랑은 이렇게 몸소 동참하는 것입니다. 말없이 같이 책임져 주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랑을 많이 얘기합니다만, 무엇이 과연 진정한 사랑입니까?
슬픈 자에게 위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슬퍼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고통 속에 있는 자에게 위로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통에 같이 고통 하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 진 자에게 쉬라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가 진 짐을 같이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근심과 고민으로 몸부림치는 자에게 같이 아파하고 힘을 주며, 절망하는 자에게 같이 경험하며, 새로운 소망을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죄인을 위하여 죄 있는 자처럼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아 주시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볼 때, 사랑이란 사랑만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의와 함께 할 때에만 사랑이 빛을 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령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서, 내 자식이 남을 해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오냐, 오냐 해주고 감싸준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하나의 정실일 뿐이에요.
의가 없는 사랑은 정실일 뿐,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좀 아는 사람이라고 무조건 그 사람의 편을 들고, 내 친구라고, 친척이라고 감싸고 드는 것은 모두가 하나의 정실에 불과한 것입니다. 정실이 통하는 곳에는 바른 정의가 살지 못합니다.
사랑도 정실에 거기에 섞이면 결국은 죽은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나 단체 안에서, 정부나 어떤 기관 안에서도, 이 정실이라는 것처럼 구역질나고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정실을 사랑으로 미화하는 것은 하나의 위선일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아무리 사랑이 무한하시다고 해도, 절대로 공의를 빼놓고서는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의 벌을 자신이 친히 죄인처럼 되어 오셔서,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신 다음에야 용서하시는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성탄의 이 뜻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서, 우리도 우리 주님이 하여주신 그대로 살겠다는 결심으로 이 대림절을 보내시며,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쁘고 아름다운 성탄의 축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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