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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바다에 왜 풍랑이 오는가?
제목 | 인생의 바다에 왜 풍랑이 오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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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 8:23-27 | ||
설교자 | 김재수 | 날짜 | 2019-02-10 |
성경 속에 많은 인물들도 어려운 풍랑을 만났습니다. 욥의 가정은 뜻하지 않은 큰 풍랑이 찾아왔습니다.
열 자식이 하루아침에 떼죽음을 당했고,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약탈당했고, 건강한 몸에 악 창이 생겨 잿더미 속에서 신음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의 일생에도 풍랑이 있었습니다. 그는 죄 없이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죄 없이 감옥에 갔습니다.
다윗 역시 뜻하지 않게 사울 왕에게 미움을 받아 여러 번 죽음을 당할 뻔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풍랑을 만나본 사람들은 풍파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병상에 누워본 사람은 건강의 귀중함을 압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가정에 큰 풍랑을 겪으며 온갖 처절한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안정된 생활이 얼마나 귀한지를 압니다.
가정에 안정, 사업의 안정, 경제적인 안정, 나아가서 정치적인 안정, 세계적인 안정을 바라고 삽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그렇게 평안할 곳이 못됩니다. 모세는 시90편에서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치 바다에 풍랑이 그칠 날이 없는 것같이 이 세상에도 환난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참다운 평안을 누릴 수가 없을까요? 아닙니다.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요14:27절에 우리 주님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평화의 공급자이십니다.
본문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보고 몰려온 군중들을 피하여 조용한 곳으로 가셔서 쉬시고자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시는 중이십니다.
물론 주님께서 타신 배는 오늘날과 같은 요트나 유람선이 아니라 겨우 몇명 정도 탈 수 있는 고기 잡는 작은 어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하셔서 배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셨고, 제자들은 순풍에 돛을 달고 뱃노래를 부르면서 기분 좋게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센 바람이 몰아치더니 물결이 높이 치솟아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출신인 제자들은 자기들의 경험과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해서 그 풍랑과 싸워봤지만 더 이상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배가 물 속에 가라앉은 절대적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급하게 된 제자들이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급히 깨웠습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구원하소서!
이때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 즉 바다가 잠잠해졌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바다에도 풍랑이 일어나면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 본문 23절 읽다.
여기서 배는 교회를 상징하고, 그 배에 예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은 오늘 이 자리가 주님이 계시는 자리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교회는 물속에 좌초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배 안에 있던 제자들이 그 큰 풍랑을 만났지만 우리 주님이 살려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 속해 있는 성도들은 우리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 당시에 제자들을 몇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① 겉만 보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보니까 멋있습니다. 기사와 이적을 베푸시고 예수님 앞에서 귀신들이 거품을 물고 떠났습니다. 병자들이 일순간에 낫습니다. 그리고 오천 명을 한꺼번에 먹이십니다. 이분만 왕으로 삼으면 정치, 경제, 사회가 해결될 것으로 굳게 믿고,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②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초자연적인 기적을 베푸는 분이심을 믿으면서도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니고데모 같은 사람입니다. 그 당시 사회적인 신분과 체면 때문에 예수가 메시아인줄 알면서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거듭남, 천국도, 영생도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③ 속으로만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고 예수님 위해 일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장사된 그 무덤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입니다.
그 무덤은 자기가 죽으면 묻히려고 사 놓은 새 무덤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의 무덤까지도 내어줄 정도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자기의 신분이 노출되기를 꺼려 예수님을 직접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④ 공식적으로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던 12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고생했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열두 제자 중 가롯유다는 자기 스승을 은30냥에 팔아 십자가에 넘겨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12제자들도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제자가 되는 길은 처음부터 완전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실수를 거듭하면서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십자가 처형 때 모두 도망을 갔었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옛 직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인간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결국에는 순교하면서까지 끝까지 주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탄 제자들이 바로 12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12제자들 같이 끝까지 주님을 따라 영원한 천국을 보장받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풍랑을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① 요나가 만난 풍랑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니느웨 성으로 가서 저들의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라고 하였으나,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내려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이 풍랑은 요나 자신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다가 만난 풍랑이었습니다. 대부분 우리도 이런 풍랑을 종종 만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반역의 길로 행하다가 큰 풍랑을 만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② 바울이 만난 풍랑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다가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중, 심한 풍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행27장에 보면, 14일간이나 풍랑에 휘말려 바다 위에 떠돌아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 배에 탔던 276명이 거의 다 죽음 직전에 이르게 되어 살 소망이 전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풍랑을 만난 이유는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주의 종의 말보다 선주와 선장의 말을 더 믿고 가다가 만난 풍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의 종의 말보다 세상 말을 더 따르다가 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③ 그런데 본문에서는 왜 이런 풍랑이 일어났습니까.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는데 시련이 오고, 실패가 옵니까? 왜 고통과 슬픔을 당해야 합니까?
왜 시련이 오고 풍랑이 옵니까?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각 개인의 형편과 믿음과 사정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때로는 깨닫게 하기 위하여, 때로는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때로는 그릇된 길을 막아 주시기 위해, 때로는 잘못을 징계하시기 위해서, 때로는 신앙이 자라도록 자극하기 위해서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역사하시고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그 뜻을 모르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고, 신앙의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또 하나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그 배 안에는 우리 주님이 함께 가고 있었는데도 풍랑을 만난 거에요.
순종했는데 풍랑을 만난 것보다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가고 있었는데 풍랑을 만났다는 것은 해석하기 곤란한 문제입니다. 주님이 멀리 계셨다면 별문제가 안 됩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그것도 조그마한 공간 안에 머리를 맞대고 있었는데 풍랑을 만났다면 이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모셨다는 단순한 행동자체 보다는 어떻게 모셨느냐가 중요합니다. 신앙자체가 중요합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생명까지도 십자가 위해서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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